독후감

파친코, 남북한과 일본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한국인들

파친코는 일제 강점기 시절, 일본으로 넘어간 한국인들의 삶을 그린 소설이다.

보통 내가 미디어로 접한 일제 강점기는 분노하게 되고, 억울하고 한 맺히는 이야기들이다. 그런데 파친코는 (물론 가슴아프지만) 결이 다른 느낌으로 읽혔다. 일제에 억울한 일을 당한 한국인 이야기라기 보단, 일제 강점기에 살아남은 보통의 사람들, 그리고 그 가족, 후손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신기한건 저자가 한국계 미국인이라는 것. 어떤 스토리를 가졌는지는 모르겠지만, 당시 일을 바로 옆에서 본 것처럼 잘 묘사한다.

이야기의 중심이 되는 선자는 일제 강점기에 영도에서 태어난 여자다. 당시 모두가 그랬듯, 일제 속에서 어려운 삶을 살았고 사연을 가지고 일본으로 떠난다. 일본어도 하지 못하고 한글도 읽을 줄 모른다. 고향을 떠나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외딴 곳에 남편 백이삭만 보고 가는 것이다. 그러기에 선자는 가족이 자신의 전부이다. 남편인 백이삭과 두 아들 노아와 모자수, 요셉과 경희까지. 선자는 부모에게서 받은 강인한 생활력으로 일본에서도 스스로 가족을 돕고 먹여살리며 보수적인 집안 분위기 속에서 가장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 선자는 자신의 어머니이자 전형적인 수동적 조선 여성인 양진과 상당히 대조된다. 자신의 아버지와 시장에 다니며 배운 것, 그리고 아버지의 사망 이후 혼자 시장에 다니며 키운 자립심, 일본에서의 살아남기 위한 생활들을 통해 그런 성격이 만들어지지 않았을까. 어쨋든 선자는 영도에서 태어나 오랜 시간을 살았지만, 후에 다시 모자수와 부산에 갔을때는 외지인이 된다.

한수는 파친코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현실적인 인물이다. 어려운 어린 시절을 보냈지만, 재능도 있고 기회를 놓치지 않는 성격에 한국에서 일이 잘 풀리고, 일본으로 넘어가 야쿠자의 집안에 들어가 일본인 가정을 꾸리고 호화롭게 산다. 겉으로만 보면 완전한 일본인이 된것이다. 한수에게는 조국에 대한 그리움은 잘 보이지 않는다. 그는 살아남는 것에 모든 걸 바친다. 살아남고 가족을 지키는 것만이 그의 존재 이유이다. 어린 시절 아버지와 단둘이 어려운 생활을 하다 아버지를 잃고 혼자 살게 된 것이 그를 만든 듯 하다. 한수는 자신의 핏줄인 노아에게 강한 애착을 보이는데 신기한 것은 일본인 핏줄인 두 딸에게는 애착이 없어보인다. 노아는 남자이고 일본인 딸들은 여자이기 때문인지, 한국인과 일본인의 차이인지는 모르겠다. 초반에 선자에게 아들을 낳아달라고 한 것을 보면 남자이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일본에서 부족한 것 없이 잘살지만, 선자와 노아에게 집착하는 것을 보면 어딘가 모르게 한국에 대한 애착이 보이기도 한다. 그런 면에서 한수 역시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느낌을 받는다.

선자의 아들들은 완전한 일본 교육을 받고 일본 사회에서 살아간다. 하지만 국적 자체가 일본인 것은 아니고 역시나 확인증 같은 것을 갱신해야 하고 한국인의 자식이라는 차별과 부당함을 받는다. 노아는 그걸 버티고 완전한 일본인으로 인정받기 위해 노력한다. 그리고 나중에는 외딴 도시에서 자신의 과거를 지우고 완전한 일본인이 되기 위해 노력한다. 반면 모자수는 어린시절의 차별을 이기지 못하고 학교를 그만둔다. 그리고 당시 한국인들이 돈을 벌기 위해 많이 빠지던 파친코 가게에 들어가 일하다 자기 가게를 차리고 운영까지 하게 된다. 재밌는 부분은 둘의 성향이나 성격은 전혀 다르지만 결국 둘 다 파친코를 운영한 것이다. 당시 한국인은 학교를 안다니던 최고 대학을 가던 사람답게 살려면 어쩔 수 없이 야쿠자나 파친코 가게를 해야 했던걸까.

노아는 자신이 극혐하던 야쿠자 아버지와 비슷하게 결국 파친코 가게를 운영한다. 백이삭을 존경해 그의 도덕심을 배웠고 고등 교육도 받으면서 완전한 일본인이 되기 위해 노력했지만, 결국 그러지 못해 자살하게 된다. 반면 모자수는 환대 받지 못하는 일본인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자식들은 미국에 유학을 보내며 가정을 꾸린다.

3세인 솔로몬은 완전한 일본인이 된 듯 하다. 한국인에 대한 차별은 여전히 보이지만 대기업에 들어가고 일본인들과 잘 어울리며 살아간다.

만약, 선자가 한수를 택했다면 어땠을까? 난 선자가 한수를 택했어야했다고 생각한다. 어느쪽을 선택했던 선자는 결국, 야쿠자 집안이 되거나 파친코 집안이 되는 것이고 어느나라에서나 환영받지 못하게 되는 것은 똑같다. 그리고 어머니 양진에게 원망을 받는 것 역시나 같다. 한수의 모습으로 보아 한수는 선자에게 진심으로 잘해주며 일본인 가정보다 한국의 가정에 충실했을 것이다. 생존이 가장 중요했던 시기에 도덕심이 중요하진 않았을 것 같다. 선자도 한수가 야쿠자라는 이유로 택하지 않은 것은 아니고 그런 것에 신경쓰지 않는 듯 하다. 한수를 택했다면, 백이삭을 만났을 때 보단 좀 더 편하고 행복한 삶을 살지 않았을까

파친코가 인상적인 이유는 일제강점기 시절 한국에서 핍박받던 한국인의 모습이 아니라 일본에 넘어간 다양한 한국인의 모습을 그려서이다. 일본에서 핍박을 받아 죽은 사람들, 자신의 조국을 지키려 운동한 사람, 순응하고 살아남은 사람, 자신만의 방법으로 살아남은 사람들이 다양하게 그려져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의 2세가 어떻게 살았고 지금 그 3세들이 어떤 모습인지 시대를 따라 일제에 상처 받은 사람들을 다양하게 그리고 있다.